카지노의 제왕, 셀던 아델슨

카지노의 제왕, 셀던 아델슨

셀던 아델슨(Sheldon Adelson)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 회장은 1934년생으로 의욕적으로 동서양을 활보하고 다닌다. 그의 비즈니스 열정은 700년 전 마르코 폴로처럼 동서양을 넘나들고 있다. * 50개 직업 전전하다 아델슨 회장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 온 유대인 택시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스턴 외곽의 흑인 밀집구역인 도체스터에서 부모와 형제 5명이 모두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살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한 기억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10대부터 돈 버는 데 골똘하였다. 12세 때 삼촌에게 빌린 200 달러로 2개의 신문 가판대를 열고 첫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캔디가게, 아이스크림 판매, 속기사, 모기지 브로커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투자자문가, 여행사 사장, 벤처캐피털리스트 등으로 변신하면서 직접 경험해 본 직업만 50개가 넘는다. 이런 야망 때문에 공부에 큰 관심을 두지는 못하였다. 그는 뉴욕시립대학에서 기업회계와 부동산을 전공하다 중퇴하였다. 그는 제대 후 뉴욕 월가에서 법원 속기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자신만의 비즈니스에 대한 꿈은 1960년대 들어 열매 맺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초 아델슨은 월가에서 주식매매 컨설팅으로 큰돈을 벌었다. 보스턴으로 돌아와 기업투자를 시작, 75개사 주식을 보유하기도 하였다. 또 AITS라는 여행사 주식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지만 1960년대 말 하락장에서 큰 손실을 보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하지만 곧 보스턴에서 아파트 등 부동산 중개업으로 재기를 시도하였으나, 아파트 시장이 침체에 빠져들면서 또 한 번 좌절을 맛보았다. 컴덱스(COMDEX)쇼를 창시하다 일생일대의 아이디어는 1971년에 찾아왔다. 아델슨은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유저>라는 컴퓨터 잡지를 발행하는 작은 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하였다.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아파트 전시회에 참석하였던 아델슨은, 아파트 관련 잡지사가 그 전시회를 주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잡지사가 컴퓨터 전시회를 주최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첫 컴퓨터 전시회를 1973년 댈러스에서 열었다. 1975년 그는 잡지사 지분을 팔았지만 전시회는 계속 열었다. 이제 전시회에 올인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보유 중이던 아파트 건물을 팔아 매사추세츠주 니드엄에서 인터페이스그룹을 창립하였다. 이 회사가 바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로 유명한 컴덱스(COMDEX)쇼를 시작하였다. 그는 1979년 라스베이거스의 MGM그랜드호텔(현 발리호텔)에서 첫 컴덱스쇼를 개최하였다. 컴덱스쇼는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시회로 발전하였다. 이 전시회는 1년에 2회 개최되며 봄엔 시카고 또는 뉴욕, 가을(11월)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마침 IBM과 애플컴퓨터 같은 개인용 컴퓨터 브랜드들이 세계적 회사로 발전한 것과 궤를 같이하였다. 1990년에는 2,200개 회사, 22만여 명이 참관하였다. 인터페이스는 당시 제곱피트(가로, 세로 30cm 면적)당 50달러를 컴덱스 참가 수수료로 받아 컨벤션센터 측에는 대관료로 제곱피트 당 15센트를 내는 고수익 비즈니스를 창출하였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미국 내 다른 도시와 유럽, 일본에서도 컴덱스쇼를 열기 시작하였다. * 위기의 라스베가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라스베가스는 도박과 환락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는데, 1978년 미국 동부에 카지노 전문 도시로 아틀랜틱 시티(Atlantic City)가 생겨남으로써 라스베가스의 성장은 주춤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틀란틱 시티로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라스베이거스는 인기 있는 도박관광지였지만 주말을 빼고 주중에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관광객 숫자가 현저하게 줄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라스베가스는 1980년대 중반에 도시전체가 무너지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라스베가스는 이 위기를 전환점으로 삼아 전환을 꾀하였다. 수천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투자하여 기존의 카지노 천국이라는 이전 이미지를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와 레저 등의 이미지로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지금의 라스베가스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레저 타운으로서 뿐만 아니라 컴덱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컨벤션 행사가 이곳의 유명 호텔의 볼룸에서 이루어지는 등, 비즈니스 타운으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전환의 주역 중 한 명이 아델슨이었다. * 아델슨, 라스베가스를 컨벤션산업 중심지로 만들다 1980년대 후반 아델슨과 인터페이스 공동경영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전시회 개최 본거지로 활용할 리조트를 찾아 나섰다. 이것이 카지노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계기가 될 줄은 당시에는 생각지 못하였다. 그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측과 수수료 분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1988년 당시 카지노 디벨로퍼였던 커크 커코리안으로부터 라스베이거스의 샌즈 호텔을 1억 2800만 달러에 사들이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50대 중반에 호텔․카지노 업계에 뛰어든 것이다. 전형적인 ‘늦깎이’였지만, 그 뒤 그는 글로벌 카지노․ 게임산업에 20년 가까이 연쇄 대지각 변동을 몰고 왔다. 원래 라스베이거스에는 비슷비슷한 호텔과 카지노 일색이었다. 그런데 애덜슨은 카지노밖에 없던 라스베이거스에, 미국 역사상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컨벤션 센터를 지었다. 아델슨은 리조트 확장에 1억 5천만 달러, 인터페이스그룹 전용 전시관 건립에 6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쇼핑몰도 짓는 등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여 1989년 새로운 샌즈 호텔이 문을 열었다. 그는 라스베가스가 도박과 관광 이외에도 컨벤션산업으로 크게 성장하게 한 장본인이다. (축구장 6개 규모의 샌즈 엑스포 & 컨벤션 센터) 1990년대 초반에 세계 금융경색으로 아델슨은 사업확장 계획을 잠시 접어야 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컴덱스쇼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는 소프트뱅크에 8억 6천만 달러를 받고 컴덱스쇼 판권을 팔았다. 그러고는 월가 자금을 끌어들여 민간이 운영하는 최초의 컨벤션센터인 ‘샌즈엑스포센터’를 개관하기에 이른다. 그 뒤 라스베가스는 몇 년 안되어 전시컨벤션산업이 확고히 자리 잡아 연간 개최되는 전시회와 컨벤션이 3천개가 넘으며 도박으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전시컨벤션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비슷해졌다. 대단한 변화를 일구어 낸 것이다. 이후 전시컨벤션산업은 더욱 발전해 독일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커져갔다. * 베네치안 리조트 탄생 199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보낸 석 달 동안의 신혼여행에서 베네치안 리조트 구상을 처음 떠올렸다.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를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재현하면 어떨까? 그 순간 세 단어가 섬광처럼 스쳤다. ‘낭만(romance)과 흥분(excitement), 최고급(luxury)’이라는 단어였다. 그는 1996년 샌즈 호텔을 허물고 그 자리에 이탈리아 풍광의 베네치아 호텔을 새로 지어 1999년에 웅장한 자태를 공개하였다. (베네치안 리조트) 40층 높이, 30만평(98만m²) 넓이의 이 리조트에는 세계 최대의 카지노와 초대형 회의장(컨벤션 센터), 객실 4,059개가 모두 스위트룸으로 꾸며진 호텔이 들어섰다. 이 리조트에는 실내에 운하가 흐르고, 천장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대형 '인공하늘'이 있었다. 호텔 2층에 마련된 수로를 떠다니는 곤돌라를 타면 이를 조종하는 건장한 이탈리아 남성이 이탈리아 민요를 불러준다. 베네치안 리조트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인정받으며 세계 최고급 호텔로 떠올랐다. 2004년 5월 베네치안 호텔에 있는 쇼핑센터인 ‘Grand Canal Shoppes’를 4억 2천만 달러에 팔았다. 그리고 그해 12월 15일 주식을 공개하여 뉴욕 주식시장에 ‘라스베가스 샌즈’라는 이름으로 상장하여 거래 첫날 액면가 29달러에서 61% 이상 상승하는 46.56 달러에 거래되었다. 시장이 얼마나 그를 신뢰하고 그 성장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지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라스베가스의 마지막 작품, 팔라쪼(Palazzo) 호텔 2007년에 16억 달러를 들여 베네치안 호텔 옆 공터에 53층, 3000여개의 객실을 가진 팔라쪼(Palazzo) 호텔을 지었다. 이탈리아어로 왕궁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를 탈무드식 교육이라고 말한다. 의사나 판사, 검사와 같은 좋은 직업을 가져라 하는 대신 어떤 분야가 되었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아델슨이 그랬다. 그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했다. 그리고 라스베가스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 아델슨의 업적, 마이스 산업 아델슨의 최고의 업적은 라스베가스를 마이스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마이스(MICE) 산업이란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박람회(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를 지칭한다. 이들의 머리글자를 따 마이스라 명명된 것이다. 라스베가스는 이제 카지노를 뛰어넘는 마이스 산업이 도시를 이끌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선 박람회와 전시·컨벤션 행사가 연간 2만 건이나 열린다. 하루 평균 50건을 넘는다. 라스베이거스는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라는 이름을 6년 전 마카오에 넘겼다. 이 도시의 관광 매출에서 카지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30% 정도에 불과하다. 카지노가 마이스에게 자리를 넘겨 준 것이다. '마이스(MICE)'는 이제 관광업계의 새로운 금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막에서 탄생한 도시, 도박의 메카에서 복합 관광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도시, 끊임없이 변신하며 성장해온 라스베이거스의 역사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흥미로운 도전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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